칠곡 진주댁
문화재자료 제 646호
소재지 ; 경상북도 칠곡군 매원3길 30~3
칠곡 진주댁은 왜관읍 매원마을의상매에 위치하고 있으며 박곡 (朴谷 ) 이원록 李元祿)의 9세손 相立에 의해서
건립되었다. 진주댁은 전면의 농경지와 동정천, 못안들 안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정형적인 배산임수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원래 안채, 사랑채,곳간채, 대문채등으로 이루어진 부유한 양반가 후예의 주택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안채와 사랑채는 일제식민지배기의 새로운 양식이 부분적으로 수용되긴 했지만,대체로 매원마을의 전통적인 건축양식이 계승,유지되고 있는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안채는 좌우측면에 눈썹지붕을 달아 실 공간을 효율적으로 확장했고, 대청 전면에 문을 달아 외기를 막도록 했다.
이런 모습은 실 공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고자 한 조선후기 상류가옥 특성을 잘 보여 주고 있어 경상북도에서
등록문화재로 지정하였다.
대문이 잠긴곳도 많고, 보수중이고 살림하는 집에는 예의상 못들어가서 겉만 담아보았습니다.
대청상부의 흔치않은 천장형식이 (연꽃무늬) 눈길을끈다.
마루는 생긴 모양에 따라 짜맞춘것이 특이하다.
오래된 향나무가 뿌리부터 주리를 틀고있는것 처럼 꼬여 있는 것이 신기하다.
매원마을은 왜관읍에서 동으로 4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풍수지리설의 물형가운데 매화낙지형으로
용두산과죽곡산, 아망산, 금무삼. 산두산, 자고산으로 둘러 쌓여 매화꽃과 같다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안동 하회마을, 경주양동마을, 칠곡매원마을을 일컬어 영남 3대 반촌으로 전해오고있으며
매원마을은 맨 처음 야성 (야로 )송씨와 벽진이씨가 살았다고 한다.
인조 원년(1623)에 廣州이씨석담 李潤雨(1569_1634)가 신동 웃갓에서 매원으로 이거 입촌하면서 집성촌을 이루어 최대 번성기1905년에 400여 채의 가옥이 있었다. 石潭은 후학을 위해 서매에 강학지소, 감호당을 짓고 셋째인 李道章에게
전수하여 후학을 양성하도록 했다. 중매와 상매는 석담의 둘째인 이도장의 차자로 대사헌을 지낸 朴谷 이원록의 자손이 살고 있으며 불천위(不遷位)를 모시는 문중이다. 대표적인 건물은 감호당, 사송헌 박곡종택과 박곡불천위사당,해은고택 관수재 아산재,용산재 등이있다. 매원마을에는 예로부터 금장지구가 있으며 서매와 산매에서 해마다 동재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다. 1950년 6,25전쟁으로 마을의 가옥이 대부분 다 소실되는 그 안타까움을 간직한 채 현재는 고택 60여채만
남아 있으며 180여 호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