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길 따라 25

까치밥

[까치밥] 떨어 질 듯 말 듯 쳐다보기만 하던 가지 끝에 매달린 홍시 한 개, 겨울 햇빛에 반짝반짝. 새하얀 눈 속에 홀로 외롭다. 몰래 쳐다보던 은밀한 눈길, 파란하늘 가득 볼 빨갛게 기다리던, 오래 품고 살아온 다섯 살의 그 시간. 끝내 떨어질 줄 모르고, 안부를 물을 수 없는 그리움으로 남았다. 그렁그렁 눈물방울처럼 매달린 세월. 까치밥이 되지 못한 홍시 한 개, 누군가를 기다리며 쪼글쪼글 홀로 외롭게 메말라가고 있다. 지우고 싶은 발자국 위로 흰 눈이 내려 온몸으로 눈발 받아 하얗게 빛나는, 잊지 못 할 그리움의 흔적, 말라가는 까치밥 같은 우리, 눈 속에 묻어두고 이제는 눈처럼 하얘지고 싶다.

마음길 따라 2024.03.05

이별

[이별] 나무는 손만 흔들 뿐이다. 돌아서서 가는 뒷모습을 보며 가만가만히 손 흔들 뿐이다. 서운함이 가득 찬 하늘을 쳐다보며 아쉬움으로 울음 울 뿐이다. 끊임없이 흔드는 슬픔의 잔가지 그늘 사이로 흩어져서 멀어져가는 이별의 아픔. 서로의 빈 가슴을 껴안지 못하고 가만 가만 손을 흔들 뿐이다. 아주 섭섭하게 떠나갈 것 다 떠나간 가을 끝자락. 간절한 눈빛. 목마름으로 선 자리에 발이 묶여 나는 지금, 잎 진 가을나무처럼 서있다.

마음길 따라 2024.02.06

박주가리 씨앗

[박주가리 씨앗] 온 생명. 우주를 품어도 가뿐한 행장. 깃털 같은 가벼운 발걸음, 바람의 마음으로 바람결에 발맞추고 박주가리 꽃씨가 날아갑니다. 한 세상 가꾸어온 푸른 생명. 한 개의 풀씨로 여물어 발걸음도 가볍게 하늘 높이 날아올라 꿈같은 여행을 떠납니다. 천천히 열리는 시간 길 위에서, 허공의 무게보다 가볍게 창공의 층계를 오르내리며 개울 건너 꿈을 찾아 멀리 멀리 날아갑니다. 두고 온 세상 한눈에 내려다보며 은빛날개 활짝 펴고 꿈을 찾아 아스라이 날아갑니다. 가난하게 살아온 세월. 바람길 거역해 먹먹한 일상, 살아가야할 세상이 너무 힘들어도 유년의 꿈으로 부푼 파란동심. 가볍게 날아오를 새하얀 소망하나 심어 놓고 박주가리꽃씨가 하늘 높이 날아갑니다.

마음길 따라 2024.01.29

가을

[가을] 쑥부쟁이는 지금 배웅을 하고 있다. 바람이 멀리 산모롱이 돌아갈 때 까지 길게, 길게 손 흔들고 있다 야속하게 떠난 그대 뒷모습. 손 한번 흔들어 주지 못하고 오래 오래 바라보기만 하며, 속절없이 기다리던 긴 세월. 서로 제 갈 길을 찾아가 오래된 그 가을은 이제 잊어버리기로 했다 끊임없이 흔드는 이별의 손짓. 쑥부쟁이는 아직도 먼 손짓을 하고 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묻지 않았다.

마음길 따라 2024.01.15

금빛노을

[금빛노을] 강이 흐르는 언덕에 서서 하늘을 보았다. 가벼운 날개 짓, 외롭게 홀로 날아가는 철새 한 마리, 양 날개로 균형을 잡으며 창공을 반으로 가르며 날아가고 있었다. 기우뚱, 기우뚱, 더듬더듬. 걷는 발걸음 마다 허방을 짚으며, 갈 길을 놓쳐버린 이 막막한 세상. 푸른 하늘을 죽죽 가르며 멀리 멀리 철새처럼 날아가고 싶었다. 길게 금을 그으며, 하늘을 가르던, 철새는 이미 뒷모습조차 보이지 않고. 높고 파란 하늘, 내 마음의 푸른 배경에, 가슴가득 넘치는 가을 하늘. 철새가 지나간 마음자락에 자잘한 실금이 가고, 내 마음 속 긴 골 따라 물길이 트였다. 애잔한 마음의 슬픈 강물에 빈 가슴 채우 듯, 금빛 노을이 가만히 내려앉았다.

마음길 따라 2024.01.03

은행나무 아래서

[은행나무 아래서] 꽃샘추위를 견디고, 가을비에 젖어보고. 피고 지는 꽃, 꽃 진 설움에도 잠겨보고. 우두커니 서서 그냥,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는데. 지금은 떨어지는 은행잎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한 목숨 태어나고, 한 목숨 지듯. 한 잎, 두 잎. 가만가만 내려앉는 은행잎. 은행나무는 말없이 나를 지켜보고, 나는 떨어지는 노란 은행잎을 바라보고... 보면 볼수록 생각하면 생각 할수록 은행잎 노란 잎이 나를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내일이 사라져도 그건 내일의 일인 듯 어디에도 없는 시공의 경계를 더듬어 본다.

마음길 따라 2022.11.25

해오라기

[해오라기가 있는 풍경] 바람 따라 가는 물비늘 강물위에 하얗게 빛나고 날아오르던 창공의 기억 잊어버린 듯. 외발로 서있는 해오라기 생각이 깊다. 한발 올려 날아오를까? 한발 내려 안식을 할까? 이제 떠나야지 하는 결심의 순간까지 망설이는 한 순간. 적막강산에 질식 같은 정적을 물고 해오라기 한 마리 죽은 듯 가만히 숨을 멈추고 외발로 서있다.

마음길 따라 2022.11.25

통증

[통증] 뜨거운 물에 몸 담그고 김 서린 거울 앞에 앉아서 너도 아프냐. 나도 아프다. 누구도 위로 할 수 없는 아픈 몸뚱어리. 아파하는 내 마음. 내가 나를 위로하며, 서로 대신할 수 없는 위로를 보낸다. 등뼈 곧게 세워 견뎌온 세월. 백년을 지탱하지 못하고, 허리 굽은 마음이 반쪽이 반쪽인 줄 모르고 서로의 통증 깊이를 잰다. 너도 아프냐. 나도 아프다. 평생 동안 조금씩 쌓인 잘못이 느린 걸음으로 찾아와 서쪽하늘 황홀한 노을 같은, 살아있음을 온 몸으로 확인하는 그 통증, 아프지 마라. 아프지 마라. 내 스스로 나에게 죄인이 되어 내가 나임을 견디면서 나를 단죄한다.

마음길 따라 2022.11.25

꽃이 웃는다

[꽃이 웃는다.] 꽃이 피고, 씨를 맺고 떨어져서 그 씨앗, 가슴에 묻었다. 어느 날 훌쩍 자라 꽃을 피웠다. 내 속에 피어 있던 꽃. 밖에 그 꽃이 있어 꽃을 본다. 꽃이 내가 되고 내가 꽃이 되는 동안 시간은 침묵 속으로 흐르고 꽃은 꽃 피우는 게 전부인 듯 환하게 웃는 꽃을 보고 내가 꽃인지 꽃이 나인지, 눈 감아도 여전히 환하게 웃기만 하고.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 꽃들이 모여 사는 세상. 꽃 한 송이 피고 지는 동안에 수천 년 전, 먼 시간 속에 나도 꽃으로 피어 있었던가. 낯선 얼굴을 보듯 꽃을 보다가 꽃 속으로 들어가서 꽃이 된다. 비로써 꽃이 꽃으로 완성 되었다. 온전한 사랑, 꽃이 환하게 웃는다.

마음길 따라 2022.11.02

조화

[조화] 철없이 피어있는 조화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이길 기원합니다. 죽은 영혼을 위해 심어놓은 이승의 징표 오랫동안 식지 않을 사랑을 기원합니다. 살아있는 자의 마음, 죽은 자의 마음. 기나긴 이별의 뒤끝을 헤아려 봅니다. 묘지를 가꾸는 일은 가슴 속의 일, 허전한 마음에 꽃 한포기 심는 일. 당신을 펼쳐 놓고 나를 읽는 일입니다. 무덤은 무덤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어 누군가의 뒤를 이어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 발원지를 찾듯 어떤 생의 그늘을 찾아서 자신의 배후를 읽어 갈 것입니다. 나를 십자가에 못질하듯 조화 한 송이 올립니다. 죽은 생명이 남긴 조화. 죽은 생명을 위한 조화 죽은 마음이 산자의 마음에 죽은 꽃을 심었습니다. 마음속에 지울 수 없는 그늘, 꽃 한 송이 심어서 수천의 꽃송이를 하늘 높이 날..

마음길 따라 2022.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