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길 따라 25

저수지

[저수지] 물의 시간이 고여 있다. 누군가가 얼굴 내밀 기다림의 시간으로 물의 무게를 안고 가만히 그물을 펼치고 있다. 하늘이 파랗게 내려와 부질없는 꿈인 듯, 흰 구름 한 덩이 띠워 놓으면 구름 둥둥, 순식간에 가을 하늘이 된다. 이따금 바람이 놀다 가면 바람의 얼굴은 물결무늬. 먼 산 그림자는 먼 산 표정을 하고 있다. 속내는 감추고 높은 것만 우러르며 둥근 얼굴 하나로 세상을 읽는다. 수많은 얼굴을 품어 안고도 또 누가 올까, 빈 하늘 기다리며, 얼굴로 얼굴을 덮어, 속 깊은 제 민낯은 숨겨버리고 남의 얼굴을 제 얼굴인 듯 반반하게 내보인다. 물속이 궁금해 저수지처럼 깊어지는 마음으로 알 수 없는 깊이를 가늠하며 햇살, 깊숙이 바닥을 살펴도 제 얼굴은 보이지 않고, 세상속의 그리움으로 물그림자 속에..

마음길 따라 2020.09.29

은모래물결

[은모래물결] 잠들지 않는 사랑의 울렁거림은 먼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 빈 가슴에 쉼 없이 밀려와 하얗게 쓰러져, 내 가슴에 공명하는 그대 심장의 끊임없는 진동. 오래 오래 손 흔들어도 닿지 못할 멀고도 긴 슬픔, 끝내 돌아올 기약 없어도 멀리 수평선 너머로 해조음 따라 일렁이는 푸른 꿈, 세상에서 가장 먼 곳에서 그대에게 보내는 너울지는 그리움은 나를 향한 내 영혼의 시들지 않는 손짓. 파도소리로 말갛게 익은 내 그리움은 그대 비밀스런 이야기로 끊임없이 밀려와 가슴에 쌓이는 은모래물결.

마음길 따라 2020.09.24

계곡물

[계곡물] 바위에 물길이 생겼다. 물결을 받아들여 물결무늬를 낳았다. 스스로 맨얼굴 드러낸 바위. 결 부드러운 유순한 표정. 천년 함묵의 울음으로 물살 뒤집던 바위, 서로가 목소리를 낮추어 거칠었던 음성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스며들어 서로가 지워진, 물결무늬 바위 얼굴에 물결무늬 물이 흘러간다. 무거운 침묵을 끊임없이 풀어낸다. 수만 년 묵은 사랑으로 조잘거린다. 바위의 마음이 물결무늬로 드러나서 물결무늬 춤을 추며 물이 흐른다. 계곡물 흘러가는 소리, 쪽 동백꽃 둥둥 떠가는 오월의 푸른 음악이 되어 지상에서 가장 맑은 천상의 노래로 매듭진 마음을 실실이 풀어주며 곱게, 곱게 여울져 춤을 추며 흘러간다.

마음길 따라 2020.09.10

갈대

갈대는 바람의 힘으로 뿌리를 내린다. 흔들림에 길들어 삶의 무게가 점점 깊어진다. 더 잘 서기 위해 드러눕기도 하며 마냥 흐느끼듯 마구 흔들리며 살아간다. 한 계절 넉넉히 바람에 흔들려 온 생애가 끊임없이 흔들려서 드러누워도 스러지지 않는 흔들림 하나로 다시 일어서는 방법을 배운다. 서로 손 맞잡고 바람과 함께 춤추며 얽힌 뿌리 힘으로 기웃 둥 거리는 삶을 고추 세운다. 뿌리와 뿌리가 서로 움켜잡고 세상의 중심에 엉겨 붙어, 흔들리는 세상을 땅의 중심으로 바로잡기 위해 흔들리는 가운데 넘어지지 않는 삶의 중심을 곧게 세우는 법을 배운다.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 갈대의 뿌리는 더욱 깊어진다.

마음길 따라 2020.08.10